법공학(Forensic Engineering)

CSI

CSI(Crime Scene Investigation)라는 외화를 즐겨 보고 있다. ‘최첨단 장비와 과학적인 분석으로 미궁속의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학수사대의 활약을 담은 범죄수사물’로 그동안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분야 중 하나였던 법의 과학(수사과학 혹은 법과학, forensic science)을 생감있고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CSI가 국내에 소개되기 이전에는 ‘법의 과학’이라는 개념은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부검을 시행하는 ‘법의 병리학(forensic pathology)’과 이에 종사하는 법의학자 등 특정분야를 칭하는 학문으로 잘못 인식이 되었지만 ‘법의 과학’은 법의 혈청학, 법의 독극물학, 법의 미생물학, 법의 유전학, 법의 곤충학, 법의 동물학, 법의 인류학, 법의 전산 정보 등 매우 다양한 분야로 분류할수 있는 폭넓은 학문이다. (CSI 길 그리섬 반장이 법의 곤충학(forensic entomology)에 관한 전문가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된다.)

법의 과학 중엔 ‘법공학(forensic engineering)’이라는 분야도 있다. 재료, 제품 그리고 구조물 등이 파괴(붕괴)되거나 본래의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인명 피해 등을 유발시킬 경우 이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는 분야를 말한다. 건설에 국한시켜 좁은 의미로 재해석을 하면 ‘계약, 설계, 시공, 유지관리 제 단계별로 어떠한 원인이 건설실패를 초래하는지 규명하는 학문’으로 할 수 있다.

Forensic engineering is the investigation of materials, products, structures or components that fail or do not operate/function as intended, causing personal injury for example. [Forensic Engineering]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몇 건의 대형 교량붕괴 사고가 있었다. 성수대교와 행주대교 등 몇몇 굵직한 교량 사고의 원인은 예상치 못했던 천재지변보다는 설계, 시공, 유지관리 등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인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서둘러 원인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는 일에만 신경쓰는데, 좀 더 면밀하게 법공학의 여러 방면 전문가들이 모여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관련기록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다른 사람의 신체에 손상을 입혔을 경우에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렸던 함무라비 법전이라는 것이 있다. 이 법전에는 건설과 관련된 조항도 있는데, 예를 들면, 집이 무너져 사람이 죽었을 경우엔 그 집을 지은 사람에게 사형이 부과 되었고, 자식들이 죽었다면 집을 지은 사람의 자식을 사형시켰다.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지만, 아마도 이와 같은 법이 지금까지 존재했다면 상당수의 사고가 미연에 방지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관련된 이해관계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진실을 감추려는 자와 캐내려는 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자 등이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얽힌 원인 규명이 있을 수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 국내 뿐만 아닌 전세계적인 현실일지도 모른다. 법공학을 통해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자는 취지는 책임자를 가려내어 문책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향후 재발 방지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성수대교, 행주대교 등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일어났던 많은 건설사고들이 법공학적으로 제대로 분석되고 규명되었는지, 만약 그러한 절차를 따랐다면 관련 분석 정보들이 일부 관련분야 종사자들에게만 국한적으로 제공되어 다양한 피드백을 수용치 못하고 진실이 사장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기억속에서 이젠 서서히 잊혀질 사건인 삼풍백화점 참사를 자세히 다룬 National Geographic Channel의 방송(Explorer: Collapse)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거나,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에서 만든, 130여년 전 일어났던 교량 사고을 현대 공학기술로 재조명한 작업을 보고 부러움을 느꼈다면, 우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참고로 성수대교, 행주대교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주요 사고에 대한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조사백서들을 국가기록포털에서 일반인들이 열람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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