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량붕괴 역사에서 참사 중 하나로 자주 소개되는 West Gate Bridge 붕괴사고가 Season3-Episode2에 나온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Understanding Bridge Collapses에 나온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 정리했다.
1970년 10월 15일, 호주 멜버른에서 건설 중이던 West Gate Bridge의 상판이 무너져 내리며 36명의 근로자가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는 잘못된 설계 판단, 시공 방법, 그리고 무리한 의사결정이 누적되어 일어난 인재였다. (공식 조사 보고서)
사고 당시의 전반적인 상황을 정리하면, 설계는 영국의 Freeman, Fox & Partners(FF&P)가 했는데, FF&P는 1932년 성공적으로 완공된 Sydney Harbour Bridge의 설계자로서 오랜 명성과 훌륭한 평판을 갖고 있었다. 참고로, 1987년 Freeman Fox 와 John Taylor & Sons가 Acer Consultants라는 이름으로 합병했고, 이 회사는 1993년 Welsh Water에 인수되어 Hyder Consulting으로 개명하여, FF&P라는 회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교량의 건설은 1968년 4월에 시작되었으며, 당초 목표는 1970년 12월에 완공하는 것이었으나, 파업 등으로 인해 1969년 말에는 약 7개월의 공기 지연이 발생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1970년 6월, 영국의 Cleddau Bridge가 붕괴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교량의 설계사가 FF&P이었다. FF&P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사고는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우연한 사건”이라고 설명하며 관계자들을 안심시키고자 노력했으며, Cleddau Bridges는 free cantilever method를 사용하여 West Gate Bridge의 시공 방식과는 다르다고 해명했다.

이 무렵, 동서 양쪽의 첫 경간(l = 112m)이 막 설치될 예정이었고, 선택된 시공 방식은 경간을 지상에서 조립한 후 이를 인양하여 교각 위에 얹는 대블록 일괄 가설 공법이었다. 그러나 Cleddau Bridge 붕괴 사고 여파로 안전을 위해 인양전 단면에 대한 보강작업이 요구되었다. 시간에 쫓긴 시공업체는 시간 절약 및 인양 하중을 줄이기 위해 다소 비정상적인 시공 방법을 택하게 되는데, 박스거더 경간을 두 개의 반쪽으로 나눠 시공하기로 한 것이다. 반쪽씩 유압잭을 이용해 들어올린 뒤, 슬라이딩 거더(sliding girder)를 설치하여 수평 방향으로 밀어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반쪽 거더를 지상에서 조립하던 중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거더가 아직 인양되기 전, 지상에서 단순 지지 상태로 놓여 있던 내부 측 플랜지(반쪽으로 잘려져 자유단이 생긴 플랜지)의 자유단에 좌굴이 발생되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4변지지 플랜지가 3변지지로 변했으니 좌굴계수 값이 대략 4.0에서 0.425로 감소하고 당연히 임계좌굴응력도 줄어들게 된다. 임시적인 플랜지 자유단으로 인해 임계 좌굴 응력(critical buckling stress)은 50% 이상 감소하였고, 이는 지상에서부터 이미 명확히 드러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좌굴 현상이 발생한 채로 교량을 인양하고 설치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좌굴 편차는 최대 380mm에 달했다.

이제 교량이 공중에 들어올려진 상태에서, 거더 반쪽을 언로드(unload)할 방법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좌굴된 플랜지 단부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이에 따라 대담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횡방향 이음(transverse splices)을 분리하여 내재된 응력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좌굴은 내부 응력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으므로, 이음부를 분리함으로써 플레이트들이 서로 미끄러지게 하여 좌굴을 펴내는 방식이었다. 결과론적으론 참사의 마지막 한방(nail in the coffin)이 된 이 방법이 꽤 만족스럽게 작동했다.
동측경간에서의 교훈(?)을 통해 서측경간은 추가로 많은 보강재를 설치하여 문제발생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노력을 했다. 서측 거더 절반을 공중에서 조립할 때, 이러한 추가 보강은 효과적이었으며, 상부 플랜지의 좌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거더 절반을 연결하려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허용 오차를 초과한 제작 및 처짐 차이로 인해, 중간 지점에서 수직 간극이 115mm 발생한 것이다. 동측 경간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있었으나, 그때는 간극이 작아 잭(jack)을 사용하여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115mm의 간극은 잭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이에 따라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한쪽 거더 위에 무거운 콘크리트 블록을 올려서 처짐을 유도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자중에 대해서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던 플랜지 자유단의 추가 보강은 이러한 임시 하중 – 즉, 콘크리트 블록의 무게 – 에 대해서는 불충분한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 임시 하중은 중간 지점의 휨모멘트를 자중만 있을 때보다 약 15~20% 증가시켰다. 결과적으로, 처짐 차이는 해소되었지만, 상부 플랜지 전역이 추가된 보강재까지 포함하여 좌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공사는 완전히 중단되었고, 무려 한 달 이상 해결책을 두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동측 경간에서 사용한 방법, 횡 이음부(transverse splice)를 분리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중간 지점의 splice부터 시작해 볼트를 하나씩 제거했다. 단, 동측경간과 달랐던 점은 이번에는 좌굴이 훨씬 심했고, 하중도 더 무거웠다는 것이었다. 볼트가 점차 제거되자, 상부 플랜지의 남은 유효 단면에 응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는 단면적 감소뿐만 아니라, 중립축의 하강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16개의 볼트를 제거한 시점에서는, 플레이트가 미끄러지면서 좌굴이 다소 감소한 것이 육안으로 확인되었으나, 동시에 남은 볼트들에는 과도한 하중이 작용해 조여진 상태가 되어, 더 이상의 제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총 37개의 볼트를 제거했을 때, 단면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교량 전체 폭에 걸쳐 좌굴이 확산되었고, 압축을 받던 수직 웨브도 좌굴이 발생되었다. 결국, 상부 플랜지의 남은 볼트들도 전단력에 의해 파단되었고, 이후 좌측 거더 절반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으며, 이때까지 일부 연결되었던 우측 거더 절반이 남은 하중 전체를 지탱하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이 사고의 과정을 살펴보면, 도대체 어떤 배짱으로 이런 판단과 결정을 강행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상식과 원칙을 거스른 오류의 연속이었고, 공식 보고서 역시 이 일련의 잘못된 판단과 설계, 시공 과정 전반을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대형 교량의 설계자인 Freeman, Fox & Partners(FF&P)는 구조 설계 과정에 대해 적절하고 세심한 고려를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또한, 원청 시공사였던 WSC가 제안한 가설 공법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교량은 시공 중의 안전율이 불충분했고, 완공되었다 하더라도 사용 중 안전율 역시 불충분했을 것이다.
두 번째 원인은, WSC가 10–11번 및 14–15번 경간의 시공을 위해 제안한 비정상적인 가설 방식이다. 이 방식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선 시공사가 평소보다 훨씬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고, 그에 따라 설계 감리사에게도 그러한 주의가 철저히 이행되도록 감독할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WSC도, 후속 시공사인 JHC도 이러한 주의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으며, 설계 감리사인 FF&P는 시공사가 위험한 시공 절차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너무나 유명한 사고라 많은 자료들이 존재한다. 일반인들은 생소한 용어 등으로 인해 이해하기 어려울텐데 Why did the West Gate Bridge collapse을 참고하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