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다듬지 못하고 주섬주섬 썼다. 써놓고 보니 뭔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 어딘가에 내 생각은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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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엔지니어들은 아름다운 교량을 만들지 못할까?
요즘 국제 교량 공모전에서 우승을 하는 교량들의 면면을 보면 유명 건축사무소나 건축가들이 참여한 작품들이 많다. 중장대교량을 제외하곤 이젠 왠만한 교량 설계는 엔지니어로부터 건축가로 업무영역이 넘어가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이다. 물론 아직까진 건축가들이 그들의 문화를 쉽게 담아 넣을 수 있는 보도교(pedestrian bridge)를 위주로 작품활동을 하지만 멀지 않아 엔지니어들이 다루었던 모든 분야에 대해 그들의 역량을 펼칠 날이 오지 않을까 내심 걱정된다.(?) 엔지니어들은 단지 컴퓨터에 앉아 계산이나 하면 되는 시대가 오지 않나 걱정되는데 엔지니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교량구조를 다루는 중견 이하의 직원들에게 업무역량강화/보완에 대한 계획을 세우라고 했더니, 백이면 백 ‘케이블 교량의 설계’를 궁극의 목표로 정했다고 한다. 여기서 ‘케이블 교량’이라 함은 사장교나 현수교같은 교량형식을 적용한 교량을 말하는데 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구체적인 형상의 교량을 머리속에 그리기보다는 단지 케이블 교량들의 개념적인 형상만을 생각한다. 멋진 교량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단지 케이블로 매단 기다란(장대) 교량을 꿈꾸는데, 이것이야말로 교량기술자가 진정 이루어야 할 꿈이라고 그들은 착각하고 있다.
교량을 단지 시설물로만 보면 차량이나 사람들이 교행하는 딱딱한 무생물 덩어리지만, 자연/환경과 동화되어 우리 곁에서 우리와 같이 생활하는, 우리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무엇이 될 수 있으며, 교량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자연으로부터 뺏어온 공간에 우리가 자연과 동등한 그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 우리 의무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교량기술자의 꿈은 계산하기 어려운 긴 다리의 설계가 아니라 교량에 뭔가(?)를 담아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문화다.
Structural engineers must resume their cultural responsibility : Buildings and structures are part of our living space at the expense of nature. The only equivalent to nature man can and must create is culture! [Jorg Schlaich, "Variety in Bridge Design"]
교량도 예술 작품같이 사람에게 어떤 임팩트를 주어야 한다. 주제를 갖는 하나의 작품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반드시 감흥을 줄 수 있는 것들이 공간에 녹아 들어 있어야 한다. 엔지니어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감흥을 줄 수 있는 것을 구상해내는 것인데 이는 단순히 개인의 역량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근본 원인은 엔지니어들이 자초한 것과 교육의 문제인 것 같다. 교량기술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을 Jorg Schlaich 교수는 이렇게 표현을 했다.
a balance of open-mindedness and solid technical knowledge – an ability to justify his creative ideas with an analytical approach
‘구조적으로 구체화를 시킬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부재가 요즘 엔지니어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구조적 효율을 추구하다 부수적으로 생길 수도 있고 엔지니어의 창의성에서 직접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구조적 효율을 추구하는 것은 엔지니어들의 기본적인 소양이므로 논외를 하면 결국 엔지니어들이 보충해야 할 것은 창의적 감각(예술적 감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너무 거창한 표현같다)을 키우는 것이다. (물론 ‘구조적 효율성의 추구’가 교량의 미와 직접 연관되므로 교량기술자의 궁극의 목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Jorg Schlaich 교수는 창의력을 키우려는 노력이 없으면 시간이 갈수록 건축가와 엔지니어 사이의 갭은 점점 더 커진다고 말했다.(아래 그림 참조) 그리고 늦더라도 건축가와의 갭을 줄이기 위해서는 학부에서 역학에 대한 과정을 마치는대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과정을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못했고 지금 이 자리에 서있다. 한 번도 칫수를 잊고 교량을 스케치해 본 적이 없다. Conceptual design이 뭔지도 모른다. 늦었지만 멋진 교량을 만들기 위해 많은 교량을 보고 분석을 하고 생각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교량을 “an engineer and an artist”가 만든다고 생각하지 말고 “an engineer and artist” 가 만든다고 생각하자. 엔지니어의 창의성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Elegance and economy are nonscientific and depend upon the engineer’s creativity
* Reference :
1. SOM Final Report, Chelsea Honigmann
6 Comments
부장님 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교량기술자들 뿐만아니라 발주처, 일반시민들에게도 왠지 케이블에대한 막연한 동경심 같은게 있는것 같아요… (저 역시…^^)
턴키나가서 교량경관 업체들이 스케치해가지고 와서 백스테이가 어쩌구 구조가 어쩌구 하는걸 보면 참 씁쓸합니다.. 우리 밥그릇 뺏기는것 같아서요.. 이미 Conceptual design이라는 밥그릇도 뺏겼는데 말이죠…(이미 뺏겻다고 봅니다…)
지금이라도 빼앗긴 밥그릇을 찾기위해 노력해야할텐데요…
근데 순순히 돌려줄까요?
이미 얼마이상 교량에는 경관설계를 의무화하는 법제가 추진된다고 하는 예기도 들리던데요…
가만있어봐라, 왜 내 블로그에는 각 포스트마다 트랙백(trackback) 주소가 안나오지?
트랙백으로 링크를 걸었으면 되었을텐데…
두서없이 쓴 글을 읽고 공감해 주니 고마울 따름일세. 현장에 한 번 내려갈께.
트랙백 찾다가 그냥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1SEG쳤습니다.
최외측 벽체(곡선부) 때문에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 새벽 1시까지 타설했네요…
단면을 왜 이렇게 잡았냐고… 협력업체 직원들 부터 감리단까지 한마디씩 하네요…^^
trackback url을 표시할 수 있는데 그냥 두기로 했다. 인코딩 방식이 틀려 너가 날린 트랙백은 다 깨져 보일 것 같아서.
조부장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직 엔지니어로서도 한참 부족한데 미학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야할 판이네요.
그렇지만 관심을 갖고 노력한다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교량을 꿰뚫어보는 눈은 바로 엔지니어가 가지고 있으니까요. 후배들을 위해서는 교육의 변화가 가장 시급한 것 같습니다.
백번동감합니다만..이렇게 기술자를 적응시킨 현실이 가슴아플 따름입니다.